NOT (NOT) LANDMARK
랜드마크 (안)만들기
랜드마크를 만드시오.
원래 랜드마크가 있었던 자리에.
수십년간 유행처럼 모든 건물은 랜드마크가 되어야 했다. 그렇지만 원래 있었던 중앙파출소가 소위 말하는 랜드마크로 작동을 했었는지는 의문이다. 리서치 끝에 우리가 다다른 결론은 케빈린치가 정의한 랜드마크가 시각적으로 인지 가능한 물리적 형상을 통해 방향을 제시하는 외부적 참조점에 가깝다면 대구 동성로의 중앙파출소 (중파 라 하자)는 조형적 우월성이나 크기, 혹은 상징적 제스처로 작동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파는 시민들의 기억과 이동 경로 속에서 반복적으로 호출되어 온 하나의 기호로서 작동해 왔다. 약속의 장소였고, 지나치는 지점이었으며,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그런 이름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새로운 시각적 대상을 추가하는 대신, 이 기호적 장소를 어떻게 지속 가능한 상태로 전이시킬 것인가에 집중하기로 했다. 원래 중파가 그러했으니.
“랜드마크를 (안) 만듦으로써 (안)랜드마크를 만들자.”
중파를 인터넷에서 찾으면 나오는 이미지. 사실 중파가 아니라 그 건너편에 있는 경북문구 상회. 저 경찰아저씨의 눈은 중파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2. 스펙타클 만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설계 과정에서 가장 경계한 것이 기 드보르 (Guy Debord)가 지적한 ‘스펙타클’의 함정이었다. 여기서 스펙타클이란 우리가 직접 살고 참여하는 대신, 세상을 구경거리 보기만 하게 되는 상태, 사람이 행위자(actor)가 아닌 스펙테이터(spectator)가 되는 상태를 말한다. 도시를 단편적 이미지로 소비하게 되면 공간의 본질은 단순해지고, 쉽게 요약되며, 곧 소진된다. 우리는 중파를 하나의 장면으로 고정하거나, 완성된 오브제로 박제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상황주의자들이 상황을 구축하듯이 도시의 맥락안에 우리의 구조물을 슬며시 밀어 넣었다. 건물을 하나의 독립된 조형물로 완성하는 대신, 사건과 우발적인 행위가 발생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순간들’을 조직하는 틀을 만들려 했다. 무언가 일어날 수 있는 상태로.
스쳐지나가는 건물. 굳이 얘기하자면 목적이 없는.
와류: 사람의 흐름
3. 도시의 와류와 표류(Dérive)
유체역학의 원리를 차용하자면 흐름이 급격하게 변하는 곳에서는 맴돌이 즉 와류라 불리는 흐름이 생긴다. 유체의 흐름의 일부가 교란 되어 반대방향으로 소용돌이치는 현상인데 동성로 중앙 파출소 부근이야말로 사람의 흐름이 와류로 변형되는 수많은 지점들이 서로 얽혀 있는 장소라 하겠다. 이에 우리는 이 에너지를 인위적으로 통제하려 하는 대신, 시민들이 목적과 경로에 얽매이지 않고 도시의 분위기에 이끌려 이동하는 표류(derive)의 상태를 경험하길 바랐다. 명확한 진입로나 내부 경로를 지시하는 대신, 외부로 열린 구조를 통해 이동의 방향을 의도적으로 유보시켰다. 이렇게 시민은 수동적인 관찰자가 아니라, 공간 속에서 스스로 상황을 만들어 내는 능동적인 참여자가 된다. 쉽게 말하자면 구조체의 주변과 내부에서 길을 잃게 되면서 목적지로 향하던 통행이 어느 순간 놀이의 걸음으로 바뀌는 셈이다. 안그래도 바쁜 와중에 걷는 것도 힘든데 즐겁기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비워두자. 비워두자. 비워두자. 그래야 겨우 채워질 것이다.
4. 기억의 갱신
과거를 기념비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은 기억을 박제한다. 우리는 목재와 철골의 그리드 체계를 통해 커뮤니티의 에너지를 담아낼 수 있는 최소한의 구조만을 제시했다. 특히 목재라는 재료가 가진 시간성은 과거의 기억을 은유하는 동시에, 후에 쌓이게 될 사용의 흔적을 투영하는 매개체가 된다. 특정 시나리오로 고정되지 않은 ‘비워진 공간’은 시민들의 반복적인 행위와 겹치며 의미가 지속적으로 갱신되는 장소적 기반이 된다. 기억은 계속해서 업데이트 된다.
시간을 나타내는 가장 자연스러운 구조의 재료들. 그렇지만 어쩌면 전혀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을수도 있는게, 이게 콘크리트가 아니다 보니 오히려 이질적으로 느껴질수도 있다.
유희적 확장(?)을 가능하게 해주는 유니버설 조인트.
5. 동성로에서 길 잃어보기
랜드마크를 (안) 만듦으로써 (안)랜드마크를 만들자. 중파프로젝트의 구조물은 시민들의 표류를 통해 도시가 매순간 새롭게 읽히도록 가능하는 “하나의 상황(situation)” 을 제안한다. 21세기가 한참 지나가는데 상황주의라니…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랜드마크로 가득 찬 도시는 우리가 도시를 즐길 수 있는 여러가지 가능성을 이미 충분히 망쳐 놓았다. 그리고 미안한데 그 랜드마크들, 그리 예쁘지도 않다. 그러니 이제 동성로에서 길을 잃어보자. 약속시간이 십분 남았으면 괜히 중파라고 불리는 구조물에 올라가 보자. 내려가는 길이 붐빈다면 (누군가 이용해 준다면 다행이지 않은가) 괜히 멀리도 바라보자. 아마 자주 보던 뷰는 아닐 것이다. 대신 멍때리다 시간이 가겠지.
도시와 건축이 만들어낼 수 있는 다양한 관계를 보장하라. 그럼 건축과 사람이 만나는 다양한 관계가 보장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약속시간에 늦었다면 이렇게 푸념하면 되겠다. “중파인지 뭔지 하는 건물 때문에 길 찾느라 한참 걸렸네.”
아래는 공모전을 위한 텍스트
대구 옛 중앙파출소 부지 신축공사(competition)
Finalist
동성로에 위치한 중앙파출소는 ‘중파’라고 불리우며 대구 역사와 문화 네트워크의 출발점으로로,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로 오랜 시간 기억되어 온 공간이다. 그 자리를 대신할 새로운 ‘중파 문화시설’은 중앙파출소가 지녔던 ‘시민의 일상과 역사의 기록물’로서의 역할을 확장하며, 시민의 에너지를 모으는 상징적 구조물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역사와 문화의 마중물이 될것이다.
새로운 중파는 이벤트를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닌 일상의 삶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된다. 이를 위해 적은 인원만이 사용할수 있는 계단식 관람석 대신 다양한 일상의 공간으로 사용될 수 있으며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수평의 관람석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관람석은 무대가 되고 광장과 건축물의 관계가 일방적이 아닌 상호적으로 바뀐다.
PS: 공모전은 대차게 떨어졌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법을 한번 안지켜 보았다. 다시는 그러면 안될 일이다.